고흐 집착놀이
다른 책에서 고흐 이야기를 좀 찾았는데, 이건 그림이 아니니 적당히 요약해보는걸로.
쇠라나 세잔느가 자연 세게를 주관적 화음과 질서로 통일하려고 한 것은 무질서한 자연 세계와는 독립된 새로운 리얼리티의 추구였다.(라고 써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한국말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그러나 그들은 인상주의 화가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세계에 머물렀고 일상적인 주제 역시 사실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보이는 세계보다는 관념의 세계, 환상과 동경의 세계, 그 감추어진 세계의 신비를 그리려고 하는 욕구가 1885년경부터 문학과 미술에서 뚜렷한 경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쿠르베가 역설하였듯이(그게 누군데. 들어본 것 같긴 한데 흠..앞에 나오는 내용인가?)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존재하는 것의 재현으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는 그 확고한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고,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불안 의식 및 정신적 가치에 대한 향수는 1880년대부터 한층 뚜렷하게 미술가들을 작가의 내면 세계의 표현으로 끌려가게 만들었다. 이러한 내면 세계의 표현과 관련된 대표적인 두 후기인상주의의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고갱(1848-1903)이다.(둘이 나이차이가 5살밖에 안나네?)
고흐는 네덜란드 태생! 10년동안 유화, 드로잉, 수채화 합쳐서 무려 천 점이나 그렸대. 1872년부터 편지 쓰기 시작해서 테오에게 무려 650통이나 썼다고.
목사 집안의 장남 태생. 집안은 대체로 목사 or 화상이었다고. 화상이었던 삼촌 소개로 구필Goupil화랑의 일을 돕게 되었다고 한다. 1875년 화랑 일 그만두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 신학대학 가려다가 포기하고 78년에 탄광에서 선교사로! 그러다가 또 그만두고 1881년 28세의 나이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
네덜란드에서 열심히 농부를 그렸대. <감자를 먹는 사람들>도 1885년에 네덜란드에서. (그림 설명에서 놀라운 점은 왼쪽 벽시계 옆에 십자가상이 있다는 점. 여태 벽시계가 있는지 십자가상이 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테오가 파리의 부세와 발라동 화랑에서 일하는 1886년 파리로 가서 코르몽의 화실에 다녔대. 거기서 친구 좀 사귀고 인상주의 영향 좀 나타남. 사람 말고 다른 것도 좀 그리기 시작하고 일본 영향도 좀 받고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페르 탕기의 초상>이 나옴. 물감 상인이고 물감값 대신 그림을 받았다고 함.
파리에서 술과 담배로 건강을 해치고 1888년 아를로 이주. 15개월정도 지내면서 200여점을 그렸다고 함. 대단한듯. <밤의 카페>를 그림.
10월쯤 고갱이 한달에 150프랑의 생활비를 받고 스튜디오를 사용하는 대신 그림을 보내라는 테오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게 되었다고. 처음엔 잘 지내다가 둘은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고갱이 떠나고 테오고 결혼하면서 고흐는 귀를 자름...
1889년 5월, 고흐는 셍 레미의 정신병원에 자의로 입원.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림.
이후 테오가 오베르로 반고흐를 데려워 가쉐 박사의 치료를 받게 함. 이때 실내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대. 아를르 시기의 원색 대비보다는 초록과 파랑, 부분적인 검은색 사용이 특징이라고 함.
<밀밭 위의 까마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1890년 7월, 권총 자살. 37세.
그의 자화상은 37점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시공사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지음. 우리집에 이런 책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