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는 전쟁의 끔찍한 현실을 그림을 통해 고발했다. 하지만 새로운 전쟁이 이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성의 과잉 때문이라는 것까지는 인식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쟁 자체의 처참함에 대해 몸서리쳤다. <전쟁의 참화>라는 연작 동판화가 대표적인데, 침략과 전쟁의 공포 및 그 비참한 결과에 대한 폭로가 가득하다. 여기에는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연작 중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 <이것이 가장 나쁘다>이다.

언뜻 보면 무슨 장면인지 잘 구별이 안 간다. 뒤편으로 군복을 입고 칼을 든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뭘까? 팔이 잘린 남성이 나뭇가지에 고치처럼 박혀 있다. 이 연작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병사들이 이 남성의 팔을 자르고 나무에 꽂아 넣는 과정이 나온다. 고야가 목격한 장면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이다. '극단적인 장면으로 전쟁의 모습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자비하고 끔찍한 학살과 고문 등으로 점철되지 않은 전쟁이 과연 있었을까?

-미술관 옆 인문학, 서해문집, 박홍순 지음. 


고야의 그림은 인상 깊게 박혀든다.

전쟁은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는걸까? 가끔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 저러는 것이 일반적인 건데 사회에서 규율이 허락하지 않아 그냥 숨기고 살아가는 것 뿐인가.

아니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인간을 미치게 만들어버리는걸까.

인간이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곤 한다. 내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걸까.


이 그림을 찾기 위해 검색하다 알게된 건데, 고야의 그림을 다룬 영화가 있다고.

<고야의 유령>, <모데카이>

기억해두고 나중에 찾아보자. 


by Sinya 2015. 2. 8. 11:46

밤의 카페.



1888년 그렸다.

69x88cm

코네티컷, 뉴해븐

예일 대학, 대학 미술관.


 아를에 온 후 반 고흐는 밤의 풍경을 몇 점 그렸다. <밤의 카페>는 아를에 있는 카페 드 라 가르(Cafe de la Gare)의 실내를 그린 그림으로 반 고흐는 이 그림이 자신의 그림 중 가장 추한 그림이라고 말하면서 낮에 자고 사흘 밤을 새워가면서 그렸다고 밝혔다.

 이 작품의 실내는 과장된 원근법의 조작이나 노란 빛을 발하는 램프, 두꺼운 물감처리나 서투른 듯한 선이 표현주의적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지만 이 그림의 표현상의 결정적인 요소는 역시 색채라고 말할 수 있다. 빨강과 노랑, 초록의 색채는 상징적이며 표현적인데 반 고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빨강색과 초록색으로 인간의 지독한 욕망을 표현하려 하였다. 방 안은 피빛 주홍과 초록빛을 발하는 레몬색의 램프가 있다. 비어 있고 음산한 방에, 자고 있는 주정뱅이의 어울리지 않는 빨강과 초록, 보라와 푸른색의 대조는 충돌적인 느낌을 준다." 이 그림에서는 앞서 아를에서 그렸던 밝고 명랑한 과수원의 그림에서와는 달리 불편하고 퇴락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시공사, 김영나.


참고로 고갱의 다음 그림과 같은 카페라고.



이건 Night Cafe in Arles(Madame Ginoux)

Paul Gauguin, 1888


by Sinya 2015. 2. 4. 18:49



페르 탕기의 초상. 1887년

캔버스에 유채. 64x50cm

개인 소장.


인터넷을 보니 버젼이 두 가지라 둘 다 가져다 붙임.


 인상주의의 아류에서 벗어나 독자적 양식으로 들어가려는 과도기적인 작품의 대표적인 예가 1887년에 그려진 <페르 탕기의 초상>이다. 

 쥘리앙 탕기가 본명인 이 몽마르트의 물감상인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를 모두 페르 탕기라 불렀다. 여러 화가들은 물감값 대신 작품을 주었고 그는 이렇게 해서 많은 작품을 모았는데 특히 세잔느의 작품이 많았다. 정면으로 앉은 페르 탕기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얼굴이나 팔, 그리고 옷에서 보여지는 빨강, 주홍, 초록 등의 강렬한 색채는 더 이상 인상파와 같은 묘사적인 색채가 아니며 화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사용된 것이다. 배경의 현란한 일본 판화는 강렬한 인체와 배경의 거리감을 일견 무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에 앉은 인물의 생생한 표현과 탄탄한 구조는 관람자의 시선을 배경의 색채로 빼앗기지 않고 인물의 존재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공사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물감이 비쌌다고는 하지만, 물감 주고 그림들을 얻다니 이 아저씨 재테크에 소질이 있으심.. 후손들이 엄청 잘 살게 되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근데 이미 잘 살고 있었을 것 같다는 게 함정. 뒤에 일본 판화들은 이미 모아둔 수집품들이시려나. (나중에 덧붙임. 고흐랑 테오의 소장품이라고 한다!) 

by Sinya 2015. 1. 24. 03:53



 네덜란드에서 약 5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대변해 주는 작품이 1885년에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다. 좁은 방 안에 감자와 차로 마련된 소찬을 먹는 농부들의 얼굴은 주름지고 거칠며 특히 손의 마디는 굵고 투박하게 강조되었다. 반 고흐는 "램프빛 아래에서 땅을 파던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려 그들이 노동을 통해 어떻게 그들의 음식을 얻었는지를 그리고 싶었다. 나는 우리 문명인과 분명히 다른 이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마지막 문장은 반 고흐가 자신을 이들 농부들과는 다른 도시 중산계급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라 하겠다.

 색채는 마치 이들이 일하는 대지의 색채와도 같이 어둡고 두꺼운 물감으로 덮여졌다. 평범한 농부들의 일상사와 도덕적 가치의 강조는 이미 루이 르 넹(Louis Le Nain, 1593-1648)이나 밀레와 같은 화가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사실주의적 주제에 속한다. 그러나 1880년대에도 농부들의 일상생활을 기독교의 도덕성과 복합시키는 주제는 여러 화가들에 의해 계속되었고 이러한 주제에 대한 관심은 반 고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중략~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왼쪽 벽시계 옆에 걸린 십자가상은 이 소박한 저녁 식탁 장면이 종교적 성찬 의식과 흡사하도록 보이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체 어딜 봐서 성찬 의식이라는거냐! 라고 하고싶다.) 

-시공사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음, 탄광을 다녀와서 주제가 농부농부하는건가 싶은 느낌? 정도. 왜 이 그림에 집착하는 것처럼 영화에 나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음. 


by Sinya 2015. 1. 24. 03:43

다른 책에서 고흐 이야기를 좀 찾았는데, 이건 그림이 아니니 적당히 요약해보는걸로.


 쇠라나 세잔느가 자연 세게를 주관적 화음과 질서로 통일하려고 한 것은 무질서한 자연 세계와는 독립된 새로운 리얼리티의 추구였다.(라고 써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한국말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그러나 그들은 인상주의 화가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세계에 머물렀고 일상적인 주제 역시 사실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보이는 세계보다는 관념의 세계, 환상과 동경의 세계, 그 감추어진 세계의 신비를 그리려고 하는 욕구가 1885년경부터 문학과 미술에서 뚜렷한 경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쿠르베가 역설하였듯이(그게 누군데. 들어본 것 같긴 한데 흠..앞에 나오는 내용인가?)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존재하는 것의 재현으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는 그 확고한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고,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불안 의식 및 정신적 가치에 대한 향수는 1880년대부터 한층 뚜렷하게 미술가들을 작가의 내면 세계의 표현으로 끌려가게 만들었다. 이러한 내면 세계의 표현과 관련된 대표적인 두 후기인상주의의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고갱(1848-1903)이다.(둘이 나이차이가 5살밖에 안나네?)


 고흐는 네덜란드 태생! 10년동안 유화, 드로잉, 수채화 합쳐서 무려 천 점이나 그렸대. 1872년부터 편지 쓰기 시작해서 테오에게 무려 650통이나 썼다고. 

 목사 집안의 장남 태생. 집안은 대체로 목사 or 화상이었다고. 화상이었던 삼촌 소개로 구필Goupil화랑의 일을 돕게 되었다고 한다. 1875년 화랑 일 그만두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 신학대학 가려다가 포기하고 78년에 탄광에서 선교사로! 그러다가 또 그만두고 1881년 28세의 나이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

 네덜란드에서 열심히 농부를 그렸대. <감자를 먹는 사람들>도 1885년에 네덜란드에서. (그림 설명에서 놀라운 점은 왼쪽 벽시계 옆에 십자가상이 있다는 점. 여태 벽시계가 있는지 십자가상이 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테오가 파리의 부세와 발라동 화랑에서 일하는 1886년 파리로 가서 코르몽의 화실에 다녔대. 거기서 친구 좀 사귀고 인상주의 영향 좀 나타남. 사람 말고 다른 것도 좀 그리기 시작하고 일본 영향도 좀 받고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페르 탕기의 초상>이 나옴. 물감 상인이고 물감값 대신 그림을 받았다고 함.

 파리에서 술과 담배로 건강을 해치고 1888년 아를로 이주. 15개월정도 지내면서 200여점을 그렸다고 함. 대단한듯. <밤의 카페>를 그림. 

 10월쯤 고갱이 한달에 150프랑의 생활비를 받고 스튜디오를 사용하는 대신 그림을 보내라는 테오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게 되었다고. 처음엔 잘 지내다가 둘은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고갱이 떠나고 테오고 결혼하면서 고흐는 귀를 자름... 

 1889년 5월, 고흐는 셍 레미의 정신병원에 자의로 입원.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림. 

 이후 테오가 오베르로 반고흐를 데려워 가쉐 박사의 치료를 받게 함. 이때 실내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대. 아를르 시기의 원색 대비보다는 초록과 파랑, 부분적인 검은색 사용이 특징이라고 함. 

 <밀밭 위의 까마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1890년 7월, 권총 자살. 37세. 

 그의 자화상은 37점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시공사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지음. 우리집에 이런 책도 있음.



by Sinya 2015. 1. 24. 03:35



내가 이 카테고리를 시작하는 건 그냥

여러 책 읽다보니 책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르길래

그걸 모아보고 싶어서. 그런데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내가 대체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음.

어쨌든 고흐를 보고 왔고, 마침 집에 고흐 그림이 '한 장' 나오는 책이 있길래 고흐로 시작.


캔버스에 유채

73x92cm

모스크바, 슈킨 컬렉션

모스크바, 국립 서양 근대 미술관

에르미타슈 미술관, 1948


 관객이 캔버스에 다가갈수록 인물들의 얼굴은 거칠고 강렬한 선과 서정적인 색상의 표현을 통해 민중적이고 삼차원적인 느낌의 양감이 시적으로 승화되고 있다.-라는 게 그림 옆에 붙은 설명.

 1888년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르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고갱을 만났다. 두 명의 예술가는 함께 살면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였다. 이 그림은 1888년 11월 이 두 작가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하였다. 반 고흐는 지금 현재 시카고의 예술 협회가 가지고 있는 같은 시기에 그려진 아를르의 나이든 사람들이 다니던 동일한 오솔길이 그려져있는 고갱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동일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예술가의 풍경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른데 반 고흐의 작품의 경우 이 오솔길은 아를르의 병원을 향하고 있으며 마치 물결치는 강처럼 혹은 불꽃처럼 묘사되고 있다. 전경과 후경의 세부적인 묘사가 없는 이 그림은 마치 폭발하는 듯한 감정의 긴장감으로 가득찬 고딕의 불꽃양식처럼 리듬감을 녹여놓았다. 선과 형태들을 둘러싸고 있는 프로필로 인해서 얻어진 이 긴장감은 어떤 경우에는 뱀처럼 어떤 경우에는 부서진 조각처럼 색상의 격렬한 대비와 힘찬 필치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 이 이미지는 마치 열띤 그러나 좌절한 생동감으로 가득찬 고흐 자신의 고통스러운 초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마로니에 북스 세계 미술관 기행 <에르미타슈 미술관>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읽고 나서 드는 생각. 아니 그래서 고갱 그림은 어딨는데? 작게라도 보여줘야 그게 뭔지 알지..그렇게만 써주면 어떻게 찾냐며 -_- 어쨌든, 이제 아를에서 고갱이랑 고흐가 작업한 건 잘 알겠다. (영화도 봤고 전시회도 다녀왔어!)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는 거 보면 그게 프랑스 남부라는 것도 알겠어. 근데 여기서 여자들이 뭐하는 건지도 알고싶은데 왜 그 설명은 없냐고요... 나중에 다른 책 보면 나오나? 그때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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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ya 2015. 1. 2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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